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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오페라 후궁으로부터의 도주

category 공연 구경 2015. 4. 20. 23:16



국립오페라단, 2015 04 16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

모차르트 오페라 후궁으로부터의 도주 (Mozart, Die Entführung aus dem Serail) 3막 징슈필


후궁으로부터의 도주, 제목이 너무 길어서 나는 보통 후궁 탈출이라고 부른다. 

또는 제라일(Serail). 피가로의 결혼을 노쩨(Nozze)라고 부르듯이.

탈출이라는 말도 엔트휘룽이라고 읽어야 하는 건가? 이래 저래 제목 어렵다. 아니 독일어가, 외국어가.

모차르트의 수많은 오페라가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마술피리나 돈 죠반니 정도나 공연하지 심지어 피가로의 결혼도 자주 하는 편은 아니다. 참 유감이다. 인지도에 따라서 표가 팔리는 숫자가 차이가 나는 건가? 


국립오페라단은 일단 믿고 볼 수 있으니까 딱히 걱정은 안했고 캐스팅을 보니 독일 오페라에 정통하신 분들이 보여서 반가웠다.

이 작품의 마케팅 포인트는 참 잡기가 힘들 것 같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알만한 유명한 아리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영화나 드라마 때문에 알려진 것도 아니니. 그러니 국립정도의 단체에서나 다양하게 시도해 볼 수 있는 작품일거다. 해주니 무지 고맙다. 티토의 자비도 고마웠어요, 국립.


 박은주씨는 요새 보러가는 오페라마다 나오시는 분인데 연기를 잘해서 내가 아주 마음에 들어하는 분이다. 돈나 안나때부터 대박이었다. 어려운 노래도 잘 하시고 뭐 더 말이 필요 없는 분. 솔직히 국내 작품이 아직도 내외하는 미풍양속(ㅋㅋㅋㅋ)이 있어서 보는 나도 어색, 하는 분들도 어색한데 이분은 진짜 편하게 볼 수 있어서 좋다. 하긴 충격적인 룰루의 연출을 생각해 보면 이런 건 뭐 아무것도 아닌겁니다?


 그리고 간만이라 되게 반가웠던 양희준님. 캐스팅 떴을 때부터 우왕 이거 완전 믿고 볼 수 있겠다 싶었던 분이다. 게다가 오스민은 출연 분량도 많기 때문에 잘하시는 분이 아니면 정말 내내 귀가 고문에 시달리게 되었을 거다.



 후궁 탈출에서 이전에 들어 본 거라곤 영화 아마데우스에 나온 화려하고 음색이 조금은 이국적인 피날레부분 뿐이었다. 그 짧은 순간에도 확실히 모차르트다운 작풍을 느낄 수 있다. 이 작품도 서양의 오리엔트-동양에 대한 동경이 들어있는 작품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투란도트나 나비부인처럼 말이다. 레하르의 오페레타에도 그런 것이 있지 않았나? 서양인들의 이국적인 것에 대한 호기심이 반영된 작품들은 어떻게 보면 참 재미있다. 익숙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고 가끔은 어리둥절 하기도 하다. 근데 그대들이 생각하는 동양이 대체 어디요. 


<영화 아마데우스 중 후궁탈출 피날레. 입다물고 있는 젤림, 신난 콘스탄체, 벨몬테인 듯?>


 후궁탈출은 동양적인 것과 서양적인 것의 간극을 최대한으로 보여줄 수 있는 설정으로 되어있다. 후궁이 있는 터키의 태수가 잡아 놓은 것은 바로 영국 여자들이다. 다른 나라도 아닌 왜 영국일까. 가장 이성적이고 여자들의 주장이 강한 나라라고 생각한 것일까? 지금 생각하면 뭐 그럴법도 하다고 여겨지기도 하다. 요즘에 작품을 만들었으면 미국여자였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유럽의 시각에서 동양을 마냥 미개하게 취급하고 있지는 않다. 결론에서 드러나지만 밧사 젤림, 태수 파샤 셀렘 정도의 인물은 그렇게 야만적인 인물은 아니다. 어찌보면 매우 신사적인 사람이다. 여자를 강압적으로 휘두르려 하지는 않는다. 매번 그런 유혹을 받는 것 같기는 하지만. 오히려 시간을 가지고 설득을 하려하고 콘스탄체의 굳건함을 더 높이 평가한다. 


 대립관계는 오스민과 나머지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젤림이 납치한 여자들을 외부로부터 차단하고 괴롭히면서 콘스탄체의 시녀인 블론데에게는 또 흑심이 있다. 역할은 그래도 오스민이 보유한 노래는 굉장히 훌륭하다. 베이스 바리톤에게는 아주 괜찮은 배역이다. 노래도 꽤 다양하고 연기도 많다. 그리고 자라스트로처럼 엄청나게 낮은 음도 소화해야하는 나름 어려운 점도 있다. 연출이나 연기를 잘못하면 야만적인 일차원적인 인물이 되기 쉬운 그런 역이다. 오스민의 연출은 단순했다. 그렇지만 양희준님은 독일어 발음도 진짜 훌륭하고 가창도 훌륭해서 덕분에 정말 마음편하게 봤다. 근데 그 단검은 칼집에 왜 그렇게 안들어 가던지 크크크.


 콘스탄체는 여주인공다운 엄청나게 어려운 곡을 소화하지 않으면 안된다. 작품은 전체적으로 부파같은 분위기이지만 콘스탄체의 노래들만은 세리에들이 많다. 아주 높고 아주 길고 잘 부르면 대박이고 간신히 부르면 본전도 못 찾는 그런 노래들이다. 박은주씨는 원래도 고음 콜로라투라인데 진짜 잘 소화하셨다. 무지막지하게 높고 어렵지만 모차르트 특유의 멜로디가 참 아름다워서 브라바 소리가 그냥 절로 나왔다. 언니 멋있어요!(멋있으면 다 언니야!!!)진짜 귀 팍팍 찌르는 초음파 속 시원하다. 바닥을 구르면서도 정확한 음정이라니.


<음파 음파 초음파>


 착하디 착한 테너 아리아. 어디서 들어봤나 했더니 분덜리히 음반에서 들어봤었다. 테너 아리아 조차도 귀엽고 예쁘고 청아한 것이 모차르트 스타일인가보다. 나는 완전 좋아하지만 으흐흐흐흐 테너에게 콜로라투라를 요구하는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부분은 이 오페라에서도 예외없다.



 3막의 징슈필 오페라. 그런데 시간이 꽤 애매하다. 두 시간 반 정도의 공연 시간인데 2막으로 나누기도 애매하고 3막으로 나누기도 애매한 그런 시간이다. 그런데 내가 졸았는지 콘스탄체의 애인인 벨몬테가 알고보니 젤림 태수의 원수였다는 설명을 못 들은 것 같다. 젤림 태수가 벨몬테를 죽일까 살릴까 고민하는 부분이 원래 내용에 있다. 자막 보기가 귀찮아서 무대만 보고 있었더니 놓쳤나?


 잠깐, 충격적인 사실을 알았다. 이 글을 쓰면서 후궁탈출에 대해서 검색을 잠깐 했는데 이게 웬일. 콘스탄체와 블론데가 영국 여자가 아니고 스페인 여자야? 그리고 젤림 태수는 원래 스페인 귀족이었는데 터키에 망명한 사람이었고? 난 벨몬테의 아버지가 터키인들과 싸워서 그의 원수가 된 것인 줄 알았더니 젤림이 스페인에 있을 때의 정적이었던 모양이군. 난 파샤 젤림의 너그러움을 칭송하면서 끝나길래 아, 이 오페라는 요제프2세가 의뢰한 것이라 그런지 아무리 터키인이라고 해도 귀족을 깎아 내리지 않고 칭송하면서 끝나는군이라고 생각했는데. 개뿔. 역시 유럽인이었다. 관용과 용기는 유럽인 전용이다 이거지.

 그들의 문화는 찬사를 하면서도 기승전유럽 칭송으로 끝나는 거였다. 이슬람문화권에 대한 경외와 두려움이 함께 읽히는 부분이다. 어쩐지 콘스탄체의 옷과 벨몬테의 옷도 뽕어께와 호박바지 더라니.


 젤림 태수는 연기는 잘 하는데 너무 말랐더라. 어께를 강조하는 의상 때문에 더 말라보여서 안쓰러웠다. 근데 이런식의 노래하지 않는 연기자역은 나름 꽤나 매력이 있다. 슈트라우스의 낙소스섬의 아리아드네에도 집사역으로 나오는 아주 매력적인 연기자역이 있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박쥐에도 코미디언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런 것이 징슈필의 전통을 가진 독일 오페라의 매력인가? 

어쨌든 젤림 태수와 콘스탄체의 갈등이 실감나지 않으면 아리아고 뭐고 말짱 꽝이 되기 때문에 이 역은 정말 중요하다. 서로 진지하게 독일어 배틀도 떠야하므로 연기력에 매력도 갖춰야 하는 역이다. 사실 벨몬테보다 오히려 이쪽 커플이 더 설레는 구석이 있다. 모든 이국적 로맨스의 기본 아닌가. 게다가 신분 높은 서브 남주가 매력적으로 그려져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싫다는 여자한테 구애하는 인물이 악역이 아닌 다음에야 차버린 다음에도 좀 아깝다는 느낌은 들어야하지 않겠어?


<밀당하는 콘스탄체와 찌질 젤림>


 서브 커플은 연출에 따라서 굉장히 느낌이 달라질 여지가 많은 것 같다. 이번 연출은 약간 방자와 향단이 같은 느낌이지만 사실 노래도 많은 편이고 성격을 부여하면 하녀나 하인이 아닌 개성이 확 살 여지가 많은 인물들이다. 오스민과의 관계도 얼마든지 더 미묘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무대는 심플하고도 인상적으로 꾸며져있다. 세트를 그림으로 처리하지 않고 구조물을 일일이 만들었고 섬세한 아라베스크풍 문양을 새긴 벽을 겹쳐서 공간을 꾸몄다. 아무런 채색 없이 깨끗한 흰색으로 만들어진 세트가 오히려 조잡하지 않고 위엄이 있어보이는 효과를 낸 것 같다. 반투명한 막으로 깊은 공간감을 주었고 2부에서는 1부의 안쪽에 있던 구조물을 전면에 내세워서 변화를 주었다. 사실 그닥 할렘이라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작은 토월극장에서 이것 저것 오브제를 늘어놓는 것 보다는 인상적인 구조물 한 두개로 표현하는 것이 훨씬 나은 선택이었다고 본다.



 다만 시작할 때 나온 동영상이 의미없이 반복되어서 엄청 어색했다. 처음에는 사람 손이 나오고 펜으로 독일어 제목을 쓰는 것이 신선했는데 그것을 서주동안 계속 반복을 하니 처음엔 동영상이 오류를 일으킨 줄 알았다. 그것도 연기자들의 등장으로 시선이 분산되면서 점점 잊혀져 가기는 했지만 차라리 반복 텀이 길거나 그냥 의미없는 배경 영상이 나오는 것이 더 나을 뻔 했다. 다행히 은은하게 배경막 뒤로 모습을 드러내는 할렘의 실루엣이 기대감을 고조시키긴 했지만.


 독특하게 연기자들을 투입해서 표현하려 한 것은 가수들의 다른 자아라고 할지 그런 역할이라고 봤는데 여러가지로 동떨어진 부분이 많아서-너무 어려보여서?-의미를 짐작하기는 쉽지 않았다. 연기자들이 현대적인 옷을 입고 있는 이유는 주제의 보편성을 나타내기 위해서일까? 그래도 시선 둘 데가 많고 외모가 화사해서 고루하지는 않았다. 가수들과의 케미도 썩 나쁘지는 않았고.


 잘츠부르크의 피가로의 결혼처럼 바리톤이 어른 연기자를 목말 태워서 노래하는 정도의 케미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니 다음에는 더 합이 딱딱 잘 맞아서 의미전달도 잘 되었으면 한다. 뭐 유럽 프로덕션 보면 더 극심한 의미불명의 연출들도 많으니까 꼭 관객들을 이해시켜야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만. 유럽 연출……. 아이고 절레절레.


 이 오페라의 마케팅 포인트는 모차르트였다고 본다. 그래서 마무리도 모차르트로 끝난다. 마지막 합창에서 밧사 젤림을 칭송하며 모차르트의 복장-흰머리 가발과 붉은 자켓과 쫄쫄이 바지-을 한 합창단이 쏟아져나와서 힘차게 멋진 하모니를 객석에 울려퍼지게 한다. 역시 합창은 현장에서 실연으로 들어야한다. 이게 직접 공연을 보고 듣는 맛인가 싶다. 특히 우리나라 합창단들은 정말 노래를 잘 해서 늘 새삼스럽게 놀라고 간다. (그러니까 탄호이저 해줘요, 제발!)


 음악을 듣다보면 마술피리가 많이 연상된다. 그러고보면 마술피리는 많은 복합장르의 특성을 다 가진 대단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칭칭칭칭 울리는 트라이앵글과 높은 피콜로의 이국적인 소리가 매력넘치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후궁 탈출. 친구 하나 늘어난 느낌이다. 이제는 이 작품의 영상물도 마음껏 파헤칠 수 있게 됐다. 아직 오페라 내용을 다 알지 못해서 더 설렌다. 다른 연출을 보면 더 많은 걸 알게 되겠지.


 하지만 뭐든 현장에서 감상하는게 제일이라니까. 역시 모차르트는 넘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