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공연] 소프라노 서예리 리사이틀 바로크와 현대

category 공연 구경 2015. 4. 21. 01:40



바로크 & 현대, 서예리 리사이틀 (Baroque and Modern, Yeree SUH soprano)

2014. 10. 03 엘지 아트센터 


작년 공연이지만 생각이 나서 후기를 올려본다.


 개인 리사이틀은 잘 보러가는 편은 아닌데 예매한 이유는 까먹었다. 아마 고음악 연주라서 보기로 마음 먹은 것 같다. 생각해보면 꽤나 바쁠 때였는데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여유가 있던 시기였던 듯 싶다. 고음악에 대한 매력에서 계속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임선혜씨 리사이틀도 가보고 싶었는데 계속 놓쳐서 안타깝던 차에 엘지아트센터의 연중 패키지이기도 해서 겸사겸사 보기로 했던 것 같다.


 사실 들어 본 적 없는 소프라노였는데 고음악과 현대음악 양쪽에서 종횡무진 활약을 하고 있단다. 레퍼토리도 잘 모르는 것들 중에 잘 알려진 것도 있었고 일단 마음을 비우고 그냥 가보기로 했다.


 물론 홈페이지에서 몇개의 레퍼토리는 들어보긴 했는데 현대음악이란. 오 마이 갓! 정말 충격이었다. 빈말 아니고 진짜 충격! 일단 악보라는게 있는 건가 싶은 생각이 우선 들었고 저건 어떻게 외워야 하는거야라는 걱정이 드는 작품들이었다. 노래도 힘든데 연기도 해야하고 그리고 그 와중에 관객들한테 어필도 해야한다. 이건 뭐 3중고인가 싶었다.


 서예리는 어떤 예고도 없이 대뜸 등장했다. 마치 무대뒤에서 공연 리허설 준비하다가 튀어나온 사람처럼 바지 평상복을 입고 머리도 대충 묶은 모습으로 도저히 자기 리사이틀에 나온 사람같지 않아서 처음엔 스텝인 줄 알았다. 그리고 무슨 소리인지 모를 이상한 소리를 연달아 질러댔다. 마치 자신의 목소리를 실험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어찌보면 인간이 이런 소리도 낼 수 있다고 그 한계를 보여주는 듯한 소리를 냈다. 솔직히 이건 연주라고 하기에도 좀 그럴 정도로 그냥 음향이었다. 진짜 이게 악보가 있긴 있나? 울었다가 웃었다가 찡그렸다가 질렀다가 별 희한한 소리를 다 들려주고 충격에 빠져 무의식 중에 박수를 치고 있는 나를 뒤로 하고 인사 후 퇴장을 하였다. 뭔가, 굉장한 것을 본 것 같은데. 어허허허.


<앨리스, 완존 깜찍 ㅋㅋㅋ>


 그리고는 귀에 익숙한 고음악과 현대음악을 번갈아 연주했다. 마음이 편안해 졌다가 충격받았다 왔다 갔다 하는 중에 우와 대단하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궁금했던 진은숙 씨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중 꽤 긴 부분을 불렀는데 영어로 된 그 헷갈리는 가사를 어떻게 외웠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알려진대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사전에도 안나오고 영미인들도 발음을 잘 모르는 이상한 단어들로 가득한 작품이 아니던가. 심지어 원작자인 루이스 캐롤이 이 단어는 이렇게 읽는 거라고 따로 해설도 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 비슷비슷하고 길고 긴 그 가사들을 오차없이 부르며 거기에 연기까지 하다니 진짜 충격이었다. 우리말로 치면 간장공장공장장과 깐콩깍지냐안깐콩까지냐의 대향연이 되는 건가.


 역시 가수들은 존경스러워.


 고음악을 부를 때는 그 시대 복식으로 드레스도 입고 나와서 약간 오버스러운 액팅까지 포함해서 충실하게 꾸며주었다. 그래서 리날도나 디도 라멘트 등 귀에 익은 음악들도 새로운 느낌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그냥 노래만 하는 것이 아닌 장르와 시대, 음악의 분위기를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소품과 장치를 사용해서 더 재미있게 꾸민 무대였다. 이름을 보니 프랑스 작곡가 같은데, 초를 밝혔다가 한 곡이 끝날 때마다 촛불 한 개를 끄는 구성이었다. 지금은 그것이 테네브레라는 형식임을 알았다. 알고 보니 제목도 테네브레였다. 성당에서 사순절에 불을 다 끄는 미사가 있는데 거기에서 유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좀 무서워하는 사순미사. 촛불 박스와 라이터는 고풍스러운 것으로 한 개 사드리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흐흐흐.



 아주 좋았던 것 중에 하나가 합시코드, 오르간, 피아노 반주가 있었다는 것. 합시코드 라이브는 너무 좋다. 정말. 나에게 있어 고음악의 매력은 그 고아한 소리에 있는 것 같다. 정말 집에 한대 들여놓고 싶은 악기다. 차랑차랑한 소리가 너무 너무 너무 이쁘다.


 앵콜로 놀랍게도 윤이상의 가곡을 불러주셨는데 무려! 아는 노래였다. 윤이상의 가곡은 진짜 어렵다. <그네(추천)>은 나도 살짝 배운적이 있는데... 어려웠다. 멜로디가 착착 감기는 것도 아니거니와 한국적인 음률이 들어있는 곡들은 다음 진행을 예상하기도 어렵고 가끔 이걸 어떻게 불러야하나 싶을 때도 있다.

또하나의 앵콜곡은 헨델의 줄리오 체자레 중 <Piangero la sorte mia>.


 쉽지 않은 현대음악과 높고 까다로운 고음악으로 자신의 길고 긴 리사이틀을 다 채울 수 있는 연주자는 정말 흔치 않을 것 같다. 그냥 유명한 노래라서 한 두 곡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확고하게 그 장르를 개척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니 새삼 참 대단한 분이다 싶다.



그리고는 음반 하나를 앱스토어에서 구입하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