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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예술하는 습관 (2011)

category 공연 구경 2016. 9. 27. 01:17

올리고 났더니 어마어마하게 옛날에 본 연극이 되어 버렸네.

2011년 6월에 내가 뭘 했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팜플렛 덕분에 이때쯤 이런 것을 봤구나하고 되새겨 보게된다.

역시, 미니멀라이프의 일환으로 나의 기억들, 나의 경험들. 내가 사랑하는 연극와 오페라의 추억을 남겨보기로 했다.

물론 미니멀라이프니까 어디 박혀있었는지도 모를 팜플렛은 홀가분하게 보내주고.

책장자리를 차지하고 있어도 한 번 꺼내보지도 않을 것이고 아니, 아예 있는 줄도 모를 게 뻔했다. 뭔가 해야 돼 해야 돼하면서-뭘 해야되는지도 모르면서-눈에 보이는데 둔답시고 침대 근처 어딘가에 끼워넣은 물건들 중 하나였다.

어느 순간부터 팜플렛을 사지 않게 되었는데, 사봤자 한 번 정도 귀가길에 다시 읽어 보는 걸로 끝이거나 내용이 너무 실망스러워서 돈이 아까운 경우가 늘자 그렇게 된 듯 싶다.

'예술하는 습관'은 그야말로 나도 습관처럼 명동 예술극장의 연극을 보는 습관으로 예매했던 작품이었다. 물론 영국 극작가들에 대한 막연한 믿음도 있었고. 벤자민 브리튼에 대한 관심도 한 몫했다.

음, 그런데 5년이나 지나고 나니 어떤 생각으로 공연장엘 갔는지, 볼때 무슨 생각이었는지 잘 기억은 안난다. 무대가 굉장히 아름다웠고, 극중극.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연극안에서 연극이야기를 하는 내용(고곤의 선물처럼)이라 흥미진진했다.

지금 생각나는 것은 오든같은 옥스포드대학의 교수가, 게다가 종신 교수로 기억된다. 살고 있는 숙소에서 쫓겨날 일도 없다고 했던 듯. 하여간 지성의 결정체 일것 같은 옥스포드 대학의 교수가, 엄청 지저분하다는 사실이었다. 얼마나 개념이 없었냐면 주방의 싱크대에서 소변을 봤다는 대사가 있었다. 허허허허. 그리고 극 중에도 나오지만 남창도 자주 불렀다.

조금 놀란 것이 여기에 소년이 나오는데, 소년은 전혀 모르겠지만 브리튼은 그런 소년들을 성적인 대상으로 봤던 것 같다. 그런 소문이 브리튼 생전에도 있었으니 이렇게 알려지게 되었던 모양인데. 하여간 나는 실제 연기자인 소년과 한 무대에서 배우가(아, 지못미 배우님 ㅠㅠ) 그런 대사를 하고 있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물론 부모의 지도하에 연극 연습도 하고 출연도 한 것이겠지만 각별한 보살핌이 필요했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결코 부디 아이가 이 내용을 몰랐기를. 

아니나 다를까 쌔끈 매끈하게 하고 나온 청년 스튜어트는 남창이었다. 너무나 당당하게 남창이라고 말을 하는데 그런 일을 하기 때문인지 성격이 싹싹하고 붙임성이 있게 나왔다. 그러면서도 옥스포드의 두 지성, 오든과 브리튼을 쌈싸먹는 삶에 대한 통찰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칼리반의 날. 템페스트를 주제로 한 모양인데 또 내가 아주 관심 많은 작품 중 하나가 템페스트여서 흥미롭게 봤다. 칼리반에 대한 여러가지 해석. 아 가장 최근에 본 '태풍기담'의 충격이 다시 떠오르네. 하여간, 칼리반은 어떤 관점에서 보면 굉장히 불쌍한 인물이다. 갑자기 심술궂은 늙은 마법사에게 어머니와 함께 살던 섬을 빼앗기고 노예로 살았다. 가르침도 받은 적이 없고, 분노만 남았을 뿐.

이 연극의 대본을 다시 보면 생각이 날텐데, 뭔 내용이었는지 모르겠네.

"진짜 예술가들은 좋은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의 최선의 것은 작품으로가고, 남은 것은 삶의 찌꺼기일 뿐이다." 라는 오든의 말은 정말 너무 정곡을 찌른다. 에밀 졸라를 보시오. 허허허허.

그러니까, 예술가들 연예인들에게 부처나 마리아같은 사람이 되라는 부담은 주지 말자. 

자료 올리느라 다시 한 번 읽어봤는데 엄청 재밌는 내용이 많은 알차게 만들어진 팜플렛이다. 돈이 아깝지 않구만.

오든과 브리튼의 관계, 브리튼의 음악관. 그리고 극작가인 배넷의 작품들. 히스토리 보이즈가 이 사람 것이었군.

언젠가 다시 찾아서 봐야겠다.

하지만 무엇보다 다시 보고 싶은 것은 대본. 역시 나는 글자가 좋은 것인가. 후훗.

지금보니 그때는 모르던 배우의 얼굴이(물론 주연배우들은 다 아는 분이셨지만) 보인다. 그동안 활동을 많이해서 얼굴을 알리신 듯.

보수적인 어르신들(??^^)이 2009년에 초연된 이런 파격적인 영국 연극을 소화해내시는 걸 보면 정말 예술가란 대단한 열정덩어리인 것 같다.